양민구 도시재생지원센터 사무국장 비상임 논설위원

도시 안에는 다양한 공간들이 존재한다. 우리는 수 없이 많은 공간들과 마주하며 우리 삶을 변화시키고, 관계를 맺으며 자아를 실현해 나간다. 하지만 현대의 도시는 사람들의 삶과 활동에 의해 살아 숨 쉬던 곳곳을 도시계획의 일환으로 모두 획일화시키고 있다. 오래된 건물과 공간, 나무들을 철거하고, 어느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비슷한 디자인의 건축물과 공간들로 채우고 있다. 

공간들은 한 번 조성되면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지킨다. 정책이나 계획에 따라, 지역의 필요에 따라 조금씩 변화되면서 사람들의 추억과 삶이 담긴 공간이 되고, 그 공간들은 마주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사람들과의 기억이 있는 '추억의 장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요즘 트랜드에 맞지 않는 '낡고 허름한 장소'로 인식될 수도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공간과 사람들과의 '관계'다.

도시는 익명성을 바탕으로 이뤄진 공동체다. 승효상 건축가의 "도시 속 공간은 공간 자체의 상징적 가치보다 그 주변에 스며들어 전해지는 일상의 이야기가 더욱 가치 있고, 시설물이나 건축물 외형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 속에서 다른 이들과 더불어 사는 관계가 더 중요하며, 도시와 건축은 완성된 결과물에 가치가 있는 게 아니라 우리의 삶을 담아 끊임없이 진화하고 지속되는데 더욱 의미가 있다"는 말처럼, 우리 주변의 공간들도 '지금의 모습'이 아니라 '주변과의 관계' 속에서 그 가치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제주시 원도심처럼 오래된 도시에는 다양한 공간과 시간 속에서 무수히 많은 관계들이 공존하고 있다. 이러한 원도심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단순히 누군가가 원하는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에 스며있는 '오래된 공간'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기능이나 역할을 바꾸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예를 들면, 제주북초등학교는 제주도 초등교육의 발상지이자 제주교육의 역사다. 하지만 원도심 쇠퇴와 함께 학생 수가 급격히 감소했고, 이제 옛날의 명성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학교를 학생 수나 시설의 규모로 그 가치를 판단할 수 있을까.

학교는 도시의 주요 구심점에 위치하여 주변 커뮤니티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공간자산이며, 학교가 존재한 시간 만큼 그 주변과 무수히 많은 관계를 맺어 왔기에 그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다. '김영수도서관'은 이러한 '관계'를 바탕으로 마을과 학교를 잇는 '마을교육공동체'들의 접점으로 다시 태어났다.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학교도서관'이 많은 사람들의 노력 속에 '마을도서관'으로 리모델링 되어 지역에 개방되었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학교와 관계를 맺으며 '김영수도서관친구들'의 차별화된 운영을 통해 조금씩 원도심을 바꿔 나가고 있다.

도시에서 중요한 것은 멋진 건축물이나 상징물이 만드는 이미지가 아니라 건축물 사이에, 거리 위에 전해지는 우리의 이야기여야 한다. 도시의 생명은 완성된 결과에 있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고 생성되는 과정 속에 있다. 그동안 '원도심 활성화'라는 명분으로 수 많은 정책과 사업들이 원도심에서 추진돼 왔지만 그 효과는 미미했다. 대부분이 그 속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파편화돼 진행됐기 때문이 아닐까.  주변의 공간들은 나에게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공간인가 고민해보자. 그리고 그 공간 속에서 나는 무엇을 추구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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