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웅 자비정사·비상임 논설위원

불교에서는 삶이 고통스러운 건 본인이 어리석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리석다는 말은 세상 이치를 모른다는 말이다. 이를 무명(無明)이라 하고 치(痴)라고도 한다. 무명이란 '밝지 못하다' '어둡다'는 말이니 우리말로도 무언가를 모를 때 '어떤 지리에 밝지 못하다' '물정에 어둡다'고 한다. 어리석음이란 한자로 치(痴)인데 풀어보면 병(病,병)'과 '지(知, 알다)' 곧 '아는 게 병들다'는 의미이다. '모른다' 보다는 '알고 있는 게 잘못됐다'는 의미가 크다. 

오늘날 우리는 모르기보다는 잘못 알고 있는 게 많다. 모르게 배워서 깨치면 되지만 알고 있는 게 잘못되면 이를 고쳐야 하므로 더 어려운 일이다. 하얀 천에 물들이기는 쉬워도 물든 천을 깨끗이 해 다시 물들이기는 여간 쉽지 않다. 더구나 자신이 지금까지 보고 들어 아는 것으로 편견과 선입견을 갖고 있어 다른 사람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더 나아가 자기 생각이 틀린 줄 알면서도 자만과 자존심 때문에 억지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비우라' '놓아라'는 말을 한다. 그릇을 비우지 않으면 음식을 담을 수 없고 손에 쥔 걸 놓지 않으면 다른 걸 쥘 수 없고 헌 옷을 벗어야 새 옷을 갈아입을 수 있다. 부처가 말한 진리는 '모든 건 인연 따라 생겨나고 인연이 다하면 사라진다. 어떤 행위가 있으면 그에 따른 반응이 일어나고 모든 존재는 서로 연결돼 있다. 따라서 나란 존재도 영원하지 못하고 변해간다.

어떤 문제를 발견하면 먼저 그 원인을 찾고 해결하기 위해선 스스로 방안을 실천하라. 세상만사는 신의 뜻도 아니요 팔자소관도 아니요 우연도 아니며 자신이 지은 결과다'는 것이다. 

이러한 세상 이치를 알지 못하는 것을 무명이라 한다. 그리해 지혜로운 자는 인연 없는 걸 바라지 않고 세상의 부귀영화가 허망한 걸 알기에 집착하지 않는다. 분에 넘치는 걸 바라기에  괴로움이 생기고 재물과 명예가 영원하길 바라기에 사라지는 괴로움이 생긴다. 

경전에서는 지혜를 세 가지로 나눠 설명한다. 감각기능을 통해 보고 듣고 맡고 맛보고 감촉하여 아는 지혜를 문혜(聞慧)라 하고 이치를 헤아려 아는 지혜를 사혜(思慧)라 하고 선정(禪定)을 닦아서 체험을 통해 깨닫는 지혜를 수혜(修慧)라 한다. 된장국을 끓이려면 어떻게 할까. 먼저 요리책을 펴 보거나 인터넷 검색을 하여 레시피를 다운받는다. 그리고 레시피에 적힌 재료를 준비하고 순서에 따라 요리하면 된다.

그런데 땀 흘려 만든 된장국의 맛이 없다. 왜 그럴까. 이는 재료의 차이와 나의 입맛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머니는 레시피도 없이 있는 재료들을 아무렇게나 넣은 것 같은데 맛있는 된장국이 된다. 이는 집안의 재료들과 가족들의 입맛을 잘 알고 있으며 오랫동안 된장국을 끓여온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레시피에 나온 그대로 만드는 것은 문혜라 할 수 있으며 재료의 종류와 내 입맛을 고려해 재료를 조절하며 만드는 것은 사혜라 할 수 있고 경험에 의해 맛있게 만드는 것은 수혜라 할 수 있다. 손에 스마트 폰이 있고 어디서나 인터넷을 이용해 각종 정보를 수집할 수 있으니 오늘날 머릿속에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건 의미가 없다. 이젠 넘쳐나는 정보가 옳고 그른가를 분석해 통합하고 사고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나아가 몸소 현실에서 경험을 통해 깨닫지 못한다면 이 또한 쓸모없다. 요리법을 몰라서 요리를 못하는 사람은 없다. 요리를 하지 않아서 요리를 못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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