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부 '잠녀'에서 미래를 읽다 –제주잠녀·문화 정체성

직업만족도조사 하위권…문화 상실에 대한 위기감 비등

‘익숙함’대신 ‘특수성’ 인정하는 사회 분위기 마련 주문

 

'703’.

올 초 한국고용정보원이 2010~2011년 국내 759개 직업의 현직 종사자 2만618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직업만족도조사에서 ‘제주 잠녀’는 어부와 함께 703위에 랭크됐다. 조사결과는 중복 등을 감안해 737위까지 순위를 정했다. △사회적 기여도(4점 만점) △직업의 지속성(4점) △발전가능성(4점) △업무환경과 시간적 여유(4점) △직무만족도(5점)를 합산해 산출한 결과라지만 어딘지 아쉽다. 사라지고 있는, 단순히 ‘직업’차원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가 사라질지 모르는 상황은 이렇게 속도를 내고 있다.

 

# 잠녀 정책 대부분 경제 기준

직업만족도조사만이 아니라 지역에서 확인되는 여러 가지 징후들을 종합할 때 ‘제주잠녀’는 더 이상 ‘직업군’으로 한정해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가 채워진다. 제주 잠녀 고령화문제와 함께 맥이 끊기고 있다는 아쉬움에 대한 답이 고급 재질의 잠수복을 지급하고 종패 등 사업 지원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아직까지 ‘잠수어업인’이란 기준을 벗지 못하는 한 어떤 문화적 잣대를 적용한다고 하더라도 그 효과는 미미할 수밖에 없다.

이는 제주도의 주요 ‘해녀 정책’을 통해서도 가늠할 수 있다.

정책을 기준으로 했을 때 ‘제주 잠녀’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크게 세 번 바뀐다. 처음은 잠녀를 둘러싼 환경적 변화 시기이고 두 번째는 ‘직업군’으로의 관리 시기이며, 세 번째는 문화적 가치 인식 부각에 따른 혼란기로 정리할 수 있다.

1970~80년대 잠녀 수가 급감하면서 마을어장 수익에까지 큰 영향을 미쳤는가 하면 산업화·도시화 등 개발 바람으로 공유수면을 매립한다거나 새로운 도로를 개통 등으로 잠녀들의 주요 작업장인 바다가 사라지고 이로 인해 생계에 큰 위협을 받은 잠녀들이 보상을 요구하는 등의 움직임이 있었다.

마을어업권 보상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고 마을어장증식사업 등 바다환경 조성 및 정화 사업으로 손실을 보전해 주기 위한 정책적 노력이 기울여진다. 특히 이 시기는 제주 관광이 성장기를 거쳐 ‘대중(단체)관광’을 중심으로 도약하던 때로 잠녀의 작업환경 개선이 공론화되기 시작한다.

1985년 작업환경개선 지원 잠수탈의장 현대화 시설 사업이 추진되고 해녀식당 등 부업 소득 증대를 위한 아이템이 계속해 도입된다. 체험어장 등은 이보다 더 뒤에 등장했다.

1990년대는 ‘직업군’으로의 관리 시기다. 이 시기는 작업환경 등이 개선됐지만 고학력화와 감귤산업 확대 및 관광산업 발달 등 환경적 이유로 잠녀를 선택하는 여성들이 줄어들고 남아있는 잠녀들은 계속해 나이를 먹어가는 고령화가 심화된다. 때문에 1986년 시작된 잠녀 의료비 지원 사업이 보다 확대되고 1999년을 시점으로 어업인지원육성기금 등으로 잠녀 의료비 지원이 본격화된다. 이는 2002년 잠수어업인 진료비 지원조례 제정의 배경이 된다. 이후 잠수병 치료를 위한 챔버 도입과 잠녀처럼 잠수복을 입고 해산물을 채취하는 해남을 대상에 포함시키는 등의 개정 작업이 계속해 진행 됐다.

잠수복 지원도 이 시기 시작됐다.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이전인 4개 시·군 체제에서 1996년 남제주군이 타 시·군 보다 먼저 잠수복을 지원하기 시작한다. 당시는 생활이 어려운 해녀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이후 나머지 기초자치단체 등에서 잠녀의 복지 증진과 소득 등대를 이유로 잠수복을 지원하기 시작한다. 이 역시 2003년부터 어업인 지원 육성 규정을 근거로 전 해녀로 그 대상을 확대했다.

2000년대는 잠녀문화의 가치 부각에 따른 혼란기로 구분할 수 있다.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전 세계적으로 ‘대한민국 제주’를 강조할 수 있는 문화 아이템으로 ‘해녀’가 채택됐고 결국 ‘해녀축제’가 치러진다. 이후 잠녀 관련 연구자들 사이에서 잠녀의 지속가능한 보존·관리를 위해서는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할 필요성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 시작한다. 2009년 해녀문화와 연계된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이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대표목록에 포함되면서 기대감 역시 높아졌지만 그만큼 제주 해녀와 해녀문화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커지게 된다.

잠녀에 대한 문화적 가치를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인정되지만 정책적으로는 직업군과 문화 사이에서 혼란을 겪고 있다는 얘기다.

 

▲ 영화 등으로 비춰진 잠녀 이미지

# 단순한 관심 이상 관리 필요

 

이런 분위기는 ‘제주 잠녀’에 대한 외부의 시각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잠녀는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너무나 흔한 우리네 이웃이었다. 당시는 1만5000명에 달하는 이들이 물질을 하며 삶을 영위했다. 당시는 지금처럼 만족도가 떨어진다는 얘기가 허용되지 않았다. 물질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상당한 자부심이었고 더구나 그들의 물질 방식은 나잠(裸潛)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독특한 것이고, 제주도와 일본에서만 그 형태가 엿보이는 것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지금 이 시간까지도 카메라를 들이대며 그들의 삶을 훑어 내려 애를 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제주 잠녀’가 소개됐다는 사실에만 매달리며 정작 내용 중에 잘못이 있는지 여부 등에 대해서는 아무도 확인해주지 않으면서 ‘잘못’이 사실로 간주되는 사례가 적잖다.

내셔널지오그래픽 1969년 3월호에 소개된 ‘제주의 해녀’는 제주 출신 탤런트 고두심씨다. 테왁 역시 촬영용으로 만들어진 듯 과거는 물론 현재의 모습과도 사뭇 다르다. 앞서 1964년 박영환 감독의 영화 ‘해녀’에서부터 8월 개봉예정인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까지 스크린에 비춰진 잠녀는 현실적이기 보다 특정한 사실만 강조된 것이 부담스러우면서도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그렇다고 잠녀들의 모습이 희화화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2010년 미국 주요 일간지 중 하나인 로스앤젤레스타임스(LAT)는 1면 중앙의 ‘칼럼 원’고정란과 5면 전면을 할애한 ‘전통에 몸을 담그다’제목의 기사를 통해 ‘제주 잠녀’를 조명했다. 여성중심의 독특한 해양문화를 넘어 어머니에서 딸로 바다의 삶을 이어온 전통 측면을 강조하는 등 지금까지의 접근과는 차별을 보였다. 기사 내용 일부가 사실과 동 떨어진다는 아쉬움이 있기는 하지만 잠녀를 살아있는 문화유산이자 지키고 보존해야할 가치를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재미교포 3세인 포토 저널리스트 브랜다 백선우의 2011년 사진집 「물때;Moon Tides: The Women Divers of Jeju Island」를 통해 제주 잠녀들의 삶과 정신, 여성적 강인함을 제대로 드러냈다.

프리다이빙 1세대 간판스타로 6개의 세계기록을 가지고 있는 프랑스인 크리스티앙 말다메는가 최근 모 언론 인터뷰에서 “제주 잠녀와의 대결을 기대한다”는 언급을 했을 만큼 그들의 탁월한 잠수 능력과 심폐기능은 세계가 인정하는 바다.

지난 4월에는 섬속의 섬 ‘가파도’잠녀 3대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숨비’(감독 류상수)가 제2회 북경국제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했다.

우리 눈에 보이는 흔한 것이었기에. 아니, 천년이상 이어온 것이었기에 특별함을 부여하지 않았지만 세계의 기준에서는 분명 특별하다. 중요한 것은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는 일이다. 혹시 모를 ‘잘못’을 최소화하고 직업이 아닌 문화로 ‘제주잠녀’를 보존하는데 대한 제주 차원의 역량 집결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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